서울고법 98나47919 (1999.02.04)
- 제목
- 반론보도
판결문
【원고,항소인】 원고 종중(소송대리인 변호사 송영욱외 1인)
【피고,피항소인】 한국방송공사(소송대리인 변호사 한경국)
【원심판결】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1998. 8. 12. 선고 97가합29791 판결
【주 문】
1.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2. 항소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피고는 매주 화요일 22:00부터 23:00까지 사이에 방송되는 'TV 조선왕조실록' 프로그램에서 별지 1. 기재와 같은 반론보도를 방송하라.
【이 유】 1. 인정사실
다음의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 내지 12호증, 을 제1 내지 6호증의 각 기재 및 기록에 첨부된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고, 반증이 없다.
가. 원고는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로 구성된 종중이고, 피고는 국내외에 대한 방송실시와 방송문화의 보급 및 이에 수반하는 사업을 행할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다.
나. 피고는 1997. 11. 18. 22:00경부터 23:00경까지 사이에 'TV 조선왕조실록'이라는 프로그램(이하 이 사건 프로그램이라 한다)을 방송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① 효종대에 논의된 북벌론의 제기 및 추진 경과와 그 의의에 대한 문제 제기
② 북벌을 위해 효종이 추진한 인재등용, 군제개혁 및 군사훈련의 내용
③ 효종의 군사적 북벌에 대하여 민생을 이유로 반대하는 대신들과의 대화를 극화한 내용
④ 당시 조선의 경제 상황에 대한 역사적 고찰
⑤ 질문자들이 극중 인물인 효종과 우암 송시열에게 북벌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토론을 극화한 <북벌 대토론회>
⑥ 동북아시아의 당시 정세를 통한 북벌의 실행가능성
⑦ 북벌 추진에 대한 백성들의 입장
⑧ 효종과 우암 송시열 사이의 기해독대를 극화한 내용
⑨ 북벌론의 역사적 의의
나. 이 사건 프로그램 중 우암 송시열이 언급된 내용은 ②, ⑤, ⑧로서 별지 2. 기재와 같다.
다. 북벌 및 이 사건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우암 송시열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자료 및 이에 기한 역사적 사실은 다음과 같다.
①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 그의 사부로서는 윤선도, 최온, 윤빈, 신석번, 심대부 등이 있었는데, 우암 송시열도 인열왕후 사후 병자호란까지 7개월 동안 봉림대군과 사제관계를 맺었다.
② 우암 송시열은 효종 원년인 1649년 사헌부장령의 승임을 사양하면서 효종에게 13조의 상소를 올렸는데(이를 '기축봉사'라고 한다), 그 중 하나가 '정사를 닦아 오랑캐를 물리칠 것(수정사이양이적)'이다.
③ 효종은 김자점의 북벌밀고 사건 후 낙향해 있던 우암 송시열을 이조판서로 임명한 뒤 효종 10년에 그와 독대하였고(이에 관한 내용을 '기해독대' 또는 '악대설화'라고 한다), 그후 효종은 왕자(현종)를 통해 그와 북벌에 관한 밀찰을 교신하였다.
④ 또한, 효종은 송시열을 이조판서로 임명한 해 겨울에 그에게 초구(담비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하사하였다.
2. 원고 주장의 요지
효종의 북벌은 당시 비밀리에 추진되었으므로 그 추진 과정은 앞서 본 기축봉사, 악대설화, 북벌밀찰, 초구발 등의 자료에 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 자료와 효종과 우암 송시열의 사제 관계 등을 종합하면 우암이 북벌에 적극 찬성하였고, 효종도 북벌계획의 중요한 내용을 우암과 상의하고, 우암이 북벌에 필요한 정책을 적극 건의하였음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이 사건 프로그램에서 우암이 북벌의 실패를 두려워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북벌을 반대하는 신하의 대표인 것처럼 방영함으로써 우암의 후손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
따라서, 원고는 피고에 대하여 별지 1. 기재와 같은 반론의 보도를 구한다.
3. 판 단
가. 반론보도청구권의 의미
(1) 언론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존립을 뒷받침하는 기본적 요소로서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하지만, 언론의 보도가 개인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내용인 경우에 여론 형성에 미치는 언론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그 개인이 입는 피해는 참으로 큰 것이므로, 이른바 무기대등의 원칙에서 피해자인 개인에게도 신속하고 대등한 방어 수단을 부여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취지에서 방송법 제41조는 방송으로 피해를 받은 자에게 반론보도의 방송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 대법원 1968. 1. 28. 선고 90다카25468 판결참조). 그러나, 다른 한편, 편면적인 정보의 흐름을 수정하여 보다 진실되고 공익에 합치되는 정보의 흐름을 꾀하는 반론권제도의 근본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반론보도청구권은 언론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어서는 아니되므로 거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어야 할 것인바, 이에 따라 방송법 제41조 제1항은 "방송에 공표된 사실적 주장에 의하여 피해를 받은 자는 ..... 반론보도의 방송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우선 '사실적 주장'에 한하여 반론을 인정하고, 나아가 이러한 사실적 주장내용에 개별적으로 관련되고 그로 인하여 명예나 신용 등 일정한 권리나 법익의 침해를 입은 자에 한하여 반론보도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2) 그리하여, 방송법 제41조 제1항소정의 '사실적 주장'이라 함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의 존부에 관한 사항의 주장으로서, 그 존재 여부를 판정할 수 없는 가치평가적 인식의 표현인 의견, 감정, 논설, 비평 등과 대비되는 것이고, 양자의 구별은 당해 보도나 표현의 진정한 의도, 그것이 공표된 방송의 성격 및 보도 경위, 주된 시청자층, 사회 일반의 가치관 및 언어생활상의 의미, 전후의 문맥과 행간에 내포된 의미 등을 개관적ㆍ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서울고등법원 1992. 8. 21.자 91라161 결정참조). 또한, 위 조항에서 '피해를 받은자'라 함은 그 보도 내용에서 지명되거나 그 보도 내용과 개별적인 연관성이 있음이 명백히 인정되는 자로서 자기의 인격적 법익이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그 보도 내용에 대한 반론 내지 반박을 제기할 이익이 있는 자를 가리키며, 그 보도 내용이 진실한지 여부는 피해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대법원 1986. 1. 28. 선고 85다카1973 판결참조).
나. 이 사건에 관한 판단
(1) 먼저 피고가 방영한 이 사건 프로그램에서 원고가 문제삼는 내용이 '사실적 주장'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이후 나라가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에서 대두된 북벌 논의의 전개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조선 후기에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다시 세울 것인가(국가재조)'라는 과제를 어떻게 풀어 갔는지를 알아보는 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우암이 거론된 부분을 살펴보면, 우암은 청나라가 척화인사로 지목한 사림세력으로서 효종과 마찬가지로 북벌론에 찬성하였지만 그 실행방법에 있어서는 '양병'을 우선으로 생각한 효종과는 달리 '안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등의 차이가 있었다는 점에 중점을 두어, 당시의 상황을 토론회 형식으로 극화하거나 효종과 우암 사이의 악대설화 내용을 요약하여 방영한 것임을 알 수 있고 앞에 나온 증거들에 의하면, 이는 원고가 주장하는 기축봉사, 악대설화, 불벌밀찰, 초구발 등의 사료에 기초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피고가 방영한 이 사건 프로그램은 원고의 주장과 같이 '우암은 북벌의 실패를 두려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북벌을 반대하는 신하의 대표이다.'라는 내용의 사실적 주장을 한 것으로 볼 수는 없고, 다만 위와 같은 사료에 나타나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가치평가를 함에 있어서 앞서 본 기획 의도에 따라 효종과 우암 간의 입장 차이에 중점을 둔 것일 뿐이다. 결국 원고가 반론보도를 구하는 별지 제1.의 내용은,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피고 나름의 가치평가와는 달리, '당시 북벌 자체를 반대한 신하들이 많았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북벌을 해야 한다는 효종의 생각에 찬성한 우암의 기본적인 입장이 더욱 강조되어었야 한다'는 원고 나름의 가치평가에 관한 반론보도를 구하는 것이므로, 이는 사실적 주장을 그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피고가 방영한 이 사건 프로그램 중 원고가 문제삼는 내용은 방송법 제41조소정의 '사실적 주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에 관하여 반론보도를 구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다.
(2) 다음으로 이 사건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원고가 방송법 소정의 '피해를 받은 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명예 등의 인격권은 일신전속적인 것이고 사람은 사망에 의하여 당연히 권리능력을 상실하므로, 인격권도 사람의 사망에 따라 소멸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은 사법상의 소송에 있어서 300년도 넘은 세월 이전에 이미 사망한 우암의 인격권 자체를 법적 보호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설사 사자의 명예훼손죄에 관한 형법 제308조나 저작권법 제14조에 기하여 사법상의 소송에 있어서도 사자 자신의 인격권을 법적 보호의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사자를 대신하여 사법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현행 실정법은 어떠한 규정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사자 자신의 인격권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이 사건에 있어서 원고로서는 우암 자신의 인격권에 관한 권리 자체를 행사할 수는 없고, 다만 자신의 인격권이 침해되는 한도에서만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뿐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또한, 원고는 우암의 후손들로 구성된 종중이고, 종중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 제사, 종원 상호 간의 친목도모 등을 목적으로 하는 자연발생적인 종족 단체이므로( 대법원 1972. 9. 12. 선고 72다1090 판결, 1994. 10. 11. 선고 94다19792 판결등 참조), 원고 자신의 인격권도 이러한 종중의 고유한 목적에 비추어 판단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가 이 사건 프로그램을 방영함에 있어서 원고 종중을 거론한 바 없음은 분명하고, 특히 그 내용 가운데에 우암이 원고 종중의 선조임을 알 수 있는 어떠한 표현(예를 들면, (명칭 생략))도 사용된 바 없으므로, 이 사건 프로그램의 보도 내용과 원고 종중과의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앞서 본 이 사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보도 내용, 특히 그것이 조선 후기의 역사에 관한 고찰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위 보도 내용과 원고 종중 사이에 간접적인 연관성이 있음도 인정하기 어렵다.
한편, 명예훼손이란 사람(종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행위를 말하고 단순히 주관적으로 명예감정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므로( 대법원 1997. 7. 9.자 97마634 결정등 참조), 설령 원고 종중의 구성원인 우암의 후손들이 이 사건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불쾌감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히 그들의 주관적 명예감정이 침해된 것에 불과하다고 봄이 상당하다. 나아가, 앞서 본 원고 종중의 목적과 이 사건 프로그램의 성격, 기획 의도, 주된 시청자층의 수준 등의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가 방영한 이 사건 프로그램으로 말미암아 원고 종중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 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특히 이 사건 프로그램의 내용은, 보기에 따라서는 '안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우암의 견해가 성급하게 '양병'을 내세우는 효종의 견해보다 훨씬 더 신중하고 우수한 것이라는 가치평가를 내릴 수도 있는 자료, 즉 당시의 피폐한 경제 상황과 백성들의 입장에 관한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프로그램의 방영으로 우암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된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론 매체에 의하여 적시된 사실이 역사적 사실인 경우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 망인이나 그 유족의 명예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 또는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하는 것인데( 대법원 1998. 2. 27. 선고 97다19038 판결참조),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우암은 조선 후기의 대정치가로서 국가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므로, 우암이 사망한 때로부터 무려 30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있어서 우암의 사상과 행적은 단순히 원고 종중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것임 분명하고, 이러한 취지에서 공영방송인 피고가 앞서 본 기회 의도 하에 이 사건 프로그램으로써 우암을 다룬 것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이 사건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원고는 방송법 제41조소정의 '피해를 받은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점에서도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4. 결 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반론보도 청구는 어는 모로 보나 이유 없으므로 이를 모두 기각 할 것인바, 제1심 판결은 그 이유 설시는 달라도 당심과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고,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재진(재판장) 황병하 조영철